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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임재가운데 믿음의 길을 걷는 자!, 출애굽기 33:12-23

2025. 8. 16. 11:03

말씀: 하나님의 임재가운데 믿음의 길을 걷는 자!

성경: 출애굽기 33:12-23

출 33:12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보시옵소서 주께서 내게 이 백성을 인도하여 올라가라 하시면서 나와 함께 보낼 자를 내게 지시하지 아니하시나이다 주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나는 이름으로도 너를 알고 너도 내 앞에 은총을 입었다 하셨사온즉

출 33:13 내가 참으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었사오면 원하건대 주의 길을 내게 보이사 내게 주를 알리시고 나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게 하시며 이 족속을 주의 백성으로 여기소서

출 33:14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친히 가리라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

출 33:15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께서 친히 가지 아니하시려거든 우리를 이 곳에서 올려 보내지 마옵소서

출 33:16 나와 주의 백성이 주의 목전에 은총 입은 줄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주께서 우리와 함께 행하심으로 나와 주의 백성을 천하 만민 중에 구별하심이 아니니이까

출 33:17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가 말하는 이 일도 내가 하리니 너는 내 목전에 은총을 입었고 내가 이름으로도 너를 앎이니라

출 33:18 모세가 이르되 원하건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

출 33:19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내 모든 선한 것을 네 앞으로 지나가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선포하리라 나는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

출 33:20 또 이르시되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출 33:21 여호와께서 또 이르시기를 보라 내 곁에 한 장소가 있으니 너는 그 반석 위에 서라

출 33:22 내 영광이 지나갈 때에 내가 너를 반석 틈에 두고 내가 지나도록 내 손으로 너를 덮었다가

출 33:23 손을 거두리니 네가 내 등을 볼 것이요 얼굴은 보지 못하리라

1. 폭풍 속에 보이는 등불

옛날 바닷가 마을에서, 한 어부가 배를 타고 먼바다로 나가 생업을 이어가곤 했다. 하지만 해가 지고 어둠이 내리면,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늘 쉽지 않았다. 그때 멀리 언덕 위, 아내가 정성스럽게 걸어둔 작은 등불이 눈에 들어왔다. 어부는 그 불빛만 바라보며 노를 저어 항구로 향했고, 거센 바다의 풍랑 속에서도 방향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런데 우리 인생의 등불은 하나님의 임재이다. 그 빛이 있기에, 어떤 폭풍과 어둠 속에서도 우리는 반드시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하나의 임재를 사모하며, 빛이신 주님을 따라 인생길을 힘있게 항해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주와 동행함이 복임을 알고

이스라엘은 금송아지 사건 이후 하나님의 진노를 사서, 하나님께서 그들과 직접 동행하지 않겠다고 하신 상황에 놓였다. 이때 모세는 하나님의 임재 없이는 약속의 땅도 의미가 없음을 고백하며, 주님의 길과 뜻을 보여 달라고 간절히 구했다.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내가 친히 가리라,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는 약속을 주셨다. 모세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더욱 깊이 알기를 원했다. 이 장면은 하나님과의 동행이 단순한 보호가 아니라, 그분의 은혜와 임재 안에 거하는 친밀한 관계임을 보여준다. 본문에 보면, 시내 산에서의 율법 수여를 통해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언약은 체결되었다. 이제부터 이스라엘은 언약의 공동체로 새 출발을 하게 된 것이다. 본장에서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새롭게 출발하는 이스라엘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신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시면서도 그들의 죄에 대한 응보로 함께 가시지 않겠다고 하셨다(1-11절). 이에 모세는 하나님께 함께 가시기를 간구하였고 그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동행하실 것을 약속하셨다(12-23절).

3.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게 해달라고 간구하고(12-13)

하나님의 사람들은 무엇을 간구하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하는가? 우리는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게 해달라고 간구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본문은 이렇게 기록한다.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보시옵소서 주께서 내게 이 백성을 인도하여 올라가라 하시면서 나와 함께 보낼 자를 내게 지시하지 아니하시나이다 주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나는 이름으로도 너를 알고 너도 내 앞에 은총을 입었다 하셨사온즉 내가 참으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었사오면 원하건대 주의 길을 내게 보이사 내게 주를 알리시고 나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게 하시며 이 족속을 주의 백성으로 여기소서.”(출 33:12-13) ‘12절’의 ‘나와 함께 보낼 자’의 의미는 새로운 동역자를 구하는 모세의 기도에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세워 주셨음을 뜻한다. 또, ‘13절’의 ‘주의 길’은 여호와의 뜻을 말한다. 즉, 인간 삶의 기준이 되는 규례를 의미한다. 우리는 늘 주님과 동행하며 그분께 은총을 입기를 바라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날마다 하나님께 은혜 구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여호와여 나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내가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소서 나의 환난 날에 내가 주께 부르짖으리니 주께서 내게 응답 하시리이다.”(시 86:6-7) 또한, 우리는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깨닫고, 그분께 기도하여 주의 은혜를 입는 복된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진실로 그는 거만한 자를 비웃으시며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나니.”(잠 3:34) 우리는 주의 길을 깨닫고 그분께 순종하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보이시고 주의 길을 내게 가르치소서 주의 진리로 나를 지도하시고 교훈하소서 주는 내 구원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종일 주를 기다리나이다.”(시 25:4-5)

뿐만 아니라, 긍휼의 약속을 기대하는 자가 되기를 바란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대언한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정의의 하나님이심이라 그를 기다리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사 30:18) 우리는 주님을 신뢰하며 기다릴 때 그분의 은총을 경험하게 됨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또한, 우리는 주님을 온전히 신뢰하며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는 주의 자녀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 4:16) 우리는 주님께서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오는 걸 기뻐하심을 알고, 담대하게 그분 앞에 나아가 주의 은혜를 경험하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나’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자가 되기를 바란다.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민 6:25) 우리는 하나님의 얼굴빛이 은혜의 상징이며, 은혜는 하나님의 임재에서 흘러나옴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하여 그분과 무관하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게 해달라고 간구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주께서 친히 동행해 주시기를 간구하고(14-16)

하나님의 사람들은 누가 동행해 주시기를 간구하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하는가? 우리는 주께서 친히 동행해 주시기를 간구하고, 두세 사람이 모인 곳에 주님이 함께하심을 알고 담대히 믿음의 길을 걷는 자가 되어야 한다. 본문은 이렇게 기록한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친히 가리라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께서 친히 가지 아니하시려거든 우리를 이곳에서 올려 보내지 마옵소서 나와 주의 백성이 주의 목전에 은총 입은 줄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주께서 우리와 함께 행하심으로 나와 주의 백성을 천하 만민 중에 구별하심이 아니니이까.”(출 33:14-16) ‘14절’의 ‘내가 친히 가리라’에서 ‘친히’는 ‘얼굴’이란 뜻으로 문자적으로는 ‘나의 얼굴이 가겠다’이다. 이를 통해 모세의 기도에 응답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알 수 있다. 그리고 ‘너를 쉬게 하리라’는 안식을 주시겠다는 뜻이다. 모세의 수고를 덜어 주시려는 하나님의 의지의 표현인 것이다. 또, ‘16절’의 ‘구별하심이’에서 구별은 ‘차이를 두는 것’을 나타낸다. 즉,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각별하신 사랑을 드러내고 있다. 우리는 이스라엘을 사랑하는 하나님께서 주의 자녀들과 함께하시기를 원하심을 알고, 그분과 친히 동행하기를 바라는 복된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함께해 주심을 믿고 두려워하지 않는 자가 되기를 바란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대언한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 41:10) 또한, 우리는 세상 끝날까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말씀하신 주님을 기대하며, 담대하게 맡은 바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할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28:20) 우리는 하나님과 동행한 에녹을 기억하며, 주와 동행하기를 사모하는 복된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창 5:24)

뿐만 아니라, 주님 안에서 참된 안식을 갖고 영적인 쉼을 누리는 자가 되기를 바란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마 11:28-29)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에 참된 안식이 있음을 기억하고, 우리는 주의 자녀와 항상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기대하며 믿음의 길을 걸어가야 할 것이다.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수 1:5) 우리는 모세, 그리고 여호수아와 함께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을 알고 힘있게 사역해야 할 것이다. ‘나’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두세 사람이 모인 곳에 주님이 함께하심을 알고 담대히 믿음의 길을 걷는 자가 되기를 바란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 18:20) 주님이 가깝게 느껴지지 않는다고 하여 낙심하는 것이 아니라, 주께서 친히 동행해 주시기를 간구하고 두세 사람이 모인 곳에 주님이 함께하심을 알고 담대히 믿음의 길을 걷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주의 영광을 보기를 사모하고(17-19)

하나님의 사람들은 무엇을 보기를 사모하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하는가? 우리는 주의 영광을 보기를 사모하고, 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여 주의 영광 가운데 살아가는 자가 되어야 한다. 본문은 이렇게 기록한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가 말하는 이 일도 내가 하리니 너는 내 목전에 은총을 입었고 내가 이름으로도 너를 앎이니라 모세가 이르되 원하건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내 모든 선한 것을 네 앞으로 지나가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선포하리라 나는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출 33:17-19) 우리는 거룩한 주의 영광을 기대하며 예배자의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대언한다. “서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사 6:3) 우리는 영광은 거룩에서 흘러나옴을 알고 거룩한 주의 자녀로 살기를 힘써야 할 것이다. 또한, 환경을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사모하기를 바란다.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롬 9:15) 우리는 영광 속에는 은혜와 긍휼함이 있음을 알고, 영광의 하나님을 기대하며 주를 경외하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출 40:34)

뿐만 아니라,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함을 아는 자가 되기를 바란다.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시 19:1) 창조 세계는 주의 영광의 무대이고, 그분의 영광은 피조물 속에 새겨져 있음을 기억하기 바란다. 또한, 새 예루살렘 성의 영광을 기대하며 힘있게 믿음의 길을 걸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침이 쓸 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고 어린 양이 그 등불이 되심이라.”(계 21:23) 우리는 주님의 날에 그분의 영광 가운데 함께 거하게 됨을 알고, 끝까지 인내하며 믿음을 지키는 복된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자신이 이렇게 주님의 영광을 사모하며 주와 동행하기를 힘쓰는 복된 자임을 알고 감사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주인이 되어 살아가는 이들은 이러한 복된 인생을 살아가지 않을 것이다. 아직도 자기 자신만을 믿고 살아가는 분들이 있다면 있는 모습 그대로 주님 앞에 나오시기를 바란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겸손히 주님을 의지하고 그분께 붙잡혀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한다. 죄의 본성을 가진 인간이 모두 전적 부패한 존재임을 깨닫고 원죄를 사하실 능력이 있으신 예수님 앞에 나오시기를 바란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 우리는 자기 뜻대로 살아갔던 과거의 삶을 회개하고, 예수 십자가의 보혈로 깨끗이 씻음을 받아 새로운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또한, 먼저 믿은 주의 자녀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주의 영광 보기를 사모하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나’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여 주의 영광 가운데 살아가는 자가 되기를 바란다. “이 말씀을 하신 후 팔 일쯤 되어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기도하시러 산에 올라가사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눅 9:28-29) 세상에서 보기 좋은 것만 구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주의 영광을 보기를 사모하고 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여 주의 영광 가운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거룩한 주의 영광 가운데 거하기를 사모하는 자!(20-23)

짧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거룩한 주의 영광 가운데 거하기를 사모하는 자가 되기를 바란다. “또 이르시되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여호와께서 또 이르시기를 보라 내 곁에 한 장소가 있으니 너는 그 반석 위에 서라 내 영광이 지나갈 때에 내가 너를 반석 틈에 두고 내가 지나도록 내 손으로 너를 덮었다가 손을 거두리니 네가 내 등을 볼 것이요 얼굴은 보지 못하리라.”(출 33:20-23) 또한, 우리는 주의 은혜는 겸손의 그릇에 담김을 알고, 겸손한 자가 되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거하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약 4:6) 우리는 끝까지 인내하고, 주의 자녀와 늘 동행하시는 하나님을 기대하며 믿음으로 승리해야 할 것이다.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사 43:2)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게 해달라고 간구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자! 주께서 친히 동행해 주시기를 간구하고, 두세 사람이 모인 곳에 주님이 함께하심을 알고 담대히 믿음의 길을 걷는 자! 주의 영광을 보기를 사모하고, 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여 주의 영광 가운데 살아가는 자! 이러한 복된 삶을 사는 자, 하나님의 임재가운데 믿음의 길을 걷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 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원문: https://saerounchurch.tistory.com/47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