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우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 시편 42:1-11
2025. 12. 31. 21:35
말씀: 도우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
성경: 시편 42:1-11
시 42:1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시 42:2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
시 42:3 사람들이 종일 내게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오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시 42:4 내가 전에 성일을 지키는 무리와 동행하여 기쁨과 감사의 소리를 내며 그들을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였더니 이제 이 일을 기억하고 내 마음이 상하는도다
시 42:5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시 42:6 내 하나님이여 내 영혼이 내 속에서 낙심이 되므로 내가 요단 땅과 헤르몬과 미살 산에서 주를 기억하나이다
시 42:7 주의 폭포 소리에 깊은 바다가 서로 부르며 주의 모든 파도와 물결이 나를 휩쓸었나이다
시 42:8 낮에는 여호와께서 그의 인자하심을 베푸시고 밤에는 그의 찬송이 내게 있어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하리로다
시 42:9 내 반석이신 하나님께 말하기를 어찌하여 나를 잊으셨나이까 내가 어찌하여 원수의 압제로 말미암아 슬프게 다니나이까 하리로다
시 42:10 내 뼈를 찌르는 칼 같이 내 대적이 나를 비방하여 늘 내게 말하기를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도다
시 42:11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나는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1. 생존을 위한 갈급함
팔레스타인 광야의 사슴에게 물은 단순한 목마름의 해소가 아니라 생존이 걸린 절박한 문제입니다. 사슴은 본래 열이 많은 동물인데, 땀샘이 거의 없어 체온 조절이 매우 어렵습니다. 맹수에게 쫓겨 전력으로 질주하거나 광야의 뜨거운 태양 아래 노출되면 체온이 급격히 상승하는데, 이때 차가운 물로 열을 식히지 못하면 뇌세포가 파괴되거나 치명적인 열사병으로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또한, 사슴이 물을 찾는 또 다른 중요한 이유는 맹수의 추격을 따돌리기 위함입니다. 물속으로 몸을 던져야만 자신의 체취를 물로 씻어내어 포식자의 예민한 코를 속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사슴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시냇물을 찾아 헤매는 것은 단순한 갈증 때문이 아니라, 타오르는 체열과 맹수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지켜내기 위한 가장 처절하고도 필사적인 몸부림입니다. 우리의 삶은 어떠합니까? 사슴이 생존을 위해 물을 찾듯이, 메마른 심령에 생수로 채워달라고 간절히 주님께 기도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낙심하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며
이 시는 레위 지파로서 성전에서 찬양과 문지기 역할을 담당했던 가문인 고라 자손의 시입니다.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섬기던 이들이, 피난과 포로 등의 이유로 인해 성전을 떠나 있게 되자 하나님을 예배하던 때를 그리워하며 부른 노래입니다. 시인은 고난과 낙심 속에서도 절망을 이겨내고 하나님께 소망을 둔다고 고백합니다. 시인은 성전을 떠나 목마른 사슴처럼 하나님을 간절히 갈망합니다(1-2절). 사람들의 조롱과 잃어버린 기쁨 탓에 깊이 슬퍼하지만(3-4절), 곧 낙심한 마음을 추스르며 주님의 인자하심을 바라봅니다(5-8절). 결국, 반석이신 하나님 앞에서 왜 절망하느냐고 스스로를 꾸짖으며, 하나님께 소망을 두기로 결단합니다(9-11절).
3. 갈급한 심령으로 주님께 나아가고(1-4)
하나님의 사람들은 어떤 심령으로 주님께 나아가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까? 우리는 갈급한 심령으로 주님께 나아가고, 값없이 와서 마시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본문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 사람들이 종일 내게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오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내가 전에 성일을 지키는 무리와 동행하여 기쁨과 감사의 소리를 내며 그들을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였더니 이제 이 일을 기억하고 내 마음이 상하는도다.”(시 42:1-4) ‘1절’의 ‘갈급함’은 원어로 <gr"[;:아라그>이다. 이는 갈증이 나서 마음이 몹시 조급한 상태입니다. 또한, ‘2절’의 ‘살아계시는’은 하나님은 이방 신들과는 다르게 모든 생명의 근원이 된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시인은 성전에서 떨어져 예배하지 못하던 상황에서 주의 임재를 사모했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과거의 예배 영광을 기억하다가 현재의 고통과 조롱 속에서 영혼의 갈급함을 가지고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우리는 다윗도 척박한 환경 가운데서 자신의 영혼이 주님을 찾는다고 고백했음을 기억하고, 환경을 탓하지 말고 주님을 찾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다윗은 유대 광야에서 피신할 때, 척박한 환경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시 63:1) 또한, 예수님께서 주시는 영원히 솟는 샘물을 맛보고, 영혼의 해갈을 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물가의 여인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 4:14) 전심으로 주를 찾아 그분을 만나는 복된 자가 됩시다.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렘 29:13) 하나님께서 간절함으로 그를 찾는 자에게 반드시 응답해 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주의 궁정을 사모하고 주님께 부르짖어 그분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성전 예배를 맡았던 레위 지파 고라 자손의 시편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살아 계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시 84:2) 우리는 예배의 자리는 단순한 장소가 아니라 생명을 지탱하는 호흡과도 같음을 알고, 예배드리기를 사모하는 복된 자가 되어야 합니다. 또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의 말씀에서 세상의 욕망이 아닌 하나님을 목말라 하는 이들이 천국의 참된 배부름과 위로를 얻게 됨을 선포하십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마 5:6) ‘우리’는 무엇을 결단해야 하겠습니까? 값없이 와서 마시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사 55:1) 하나님의 은혜는 돈으로 살 수 없고 목마름으로 주님께 나아오는 자에게 값없이 주어짐을 기억합시다. 세상의 것에 목말라 하는 것이 아니라, 갈급한 심령으로 주님께 나아가고 값없이 와서 마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고난의 파도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고(5-8)
하나님의 사람들은 어떤 파도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지혜로운 자가 되겠습니까? 우리는 고난의 파도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연단을 잘 받고 정금과 같이 나아가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본문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내 하나님이여 내 영혼이 내 속에서 낙심이 되므로 내가 요단 땅과 헤르몬과 미살 산에서 주를 기억하나이다 주의 폭포 소리에 깊은 바다가 서로 부르며 주의 모든 파도와 물결이 나를 휩쓸었나이다 낮에는 여호와께서 그의 인자하심을 베푸시고 밤에는 그의 찬송이 내게 있어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하리로다.”(시 42:5-8) ‘5절’의 ‘낙심하며’는 ‘구부러지다’는 뜻입니다. 즉, 마음이 심하게 눌려서 똑바로 서 있을 수 없는 상태입니다. 또한, ‘불안해’는 영혼이 성난 파도처럼 심하게 요동치는 것을 표현합니다. 성전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에 머물던 고라 자손들, 그들은 깊은 낙심과 시련 속에서 자기 영혼을 향해 하나님께 소망을 둘 것을 고백합니다. 우리는 거센 물결 같은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신뢰하며 주님 앞에 찬양과 기도로 나아가야 합니다. 위기 가운데서도 보호하시는 하나님을 잘 깨닫기 바랍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사 43:2) 고난의 파도가 덮치는 상황에서도 주님께서 주의 자녀를 보호해 주심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또한,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해도 낙심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이렇게 편지합니다.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고후 4:8-9) 질그릇 같은 우리 안에 보배이신 예수님이 계심을 잘 깨닫고 사방으로 포위를 당해도 결코 소망을 잃지 마시기 바랍니다. 기가 막힐 웅덩이에서도 건지시는 주님을 알고, 그 시간에 주님께 부르짖어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합시다.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도다.”(시 40:1-2)
뿐만 아니라, 소망의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바울은 로마 교회에 이렇게 편지합니다.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롬 15:13) 우리는 소망의 근원 되시는 하나님과 동행하고,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주의 기쁨 가운데 거하는 복된 자가 되어야 합니다. 또한, 바울과 실라가 옥중에서 찬양할 때 기적이 일어났음을 알고, 찬양과 기도로 믿음 생활에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행 16:25) ‘우리’는 무엇을 결단해야 하겠습니까? 연단을 잘 받고 정금과 같이 나아가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벧전 1:7) 고난을 통과하며 자기 안에 불순물들을 제거하고 정금과 같은 믿음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시다. 세상 풍파에 지쳐 쓰러져 있는 것이 아니라, 고난의 파도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연단을 잘 받고 정금과 같이 나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낙심끝에서 승리의 노래를 부르고(9-11)
하나님의 사람들은 낙심끝에서 어떠한 노래를 부르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까? 우리는 낙심끝에서 승리의 노래를 부르고, 염려하지 말고 기도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본문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내 반석이신 하나님께 말하기를 어찌하여 나를 잊으셨나이까 내가 어찌하여 원수의 압제로 말미암아 슬프게 다니나이까 하리로다. 내 뼈를 찌르는 칼같이 내 대적이 나를 비방하여 늘 내게 말하기를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도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나는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시 42:9-11) 시인은 성전에서 멀리 떨어진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 버림받은 듯한 고통과 대적들의 조롱을 겪었으나, 자신의 영혼 앞에 탄식과 믿음의 질문을 쏟아놓았습니다. 우리는 주어진 환경을 보며 낙심하지 말고, 반석이신 하나님을 붙잡고 그분을 찬양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원수 앞에서도 위축되지 말고 승리케 하실 주님을 바라보며 달려가시기 바랍니다. 미가 선지자는 원수들의 조롱 앞에서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 “나의 대적이여 나로 말미암아 기뻐하지 말지어다 나는 엎드러질지라도 일어날 것이요 어두운 데에 앉을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의 빛이 되실 것임이로다.”(미 7:8) 우리는 어떠한 위기 가운데서도 빛되신 주님을 붙잡으면 반드시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또한, 슬픔 대신 찬송을 부르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대언합니다.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사 61:3) 우리는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시는 역전의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분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주의 자녀의 편이 되시는 주님을 신뢰하고 담대하게 믿음으로 나아갑시다.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롬 8:31)
뿐만 아니라,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합 3:17-18) 하박국 선지자가 모든 소유가 사라지고 소망이 끊어진 상황에서도, 환경이 아닌 하나님 한 분만으로 기뻐하며 찬양했듯이 우리 또한 그러한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또한, 조급하지 말고 주님의 때를 기다리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다윗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너는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 강하고 담대하며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시 27:14) 우리는 두려운 상황에서도 조급해하지 않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믿음으로 나아가는 이가 바로 자신임을 알고 감사해야 합니다. 하지만 스스로 주인이 되어 살아가는 이들은 이러한 복된 인생을 살지 못할 것입니다. 자신이 전적 부패한 존재임을 깨닫고, 원죄를 사하실 권능이 있으신 예수 그리스도 앞에 지금 모습 그대로 나오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향한 놀라운 사랑의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 자아 중심의 과거를 회개하고 십자가 보혈로 씻음을 받아 새로운 삶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이미 구원받은 성도들은 이 모든 은혜에 감사하며,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기뻐하는 성숙한 주의 자녀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결단해야 하겠습니까? 염려하지 말고 기도하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6-7) 염려를 기도로 바꾸는 순간,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 마음을 요새처럼 지켜주심을 기억합시다. 세상에서 실패했다고 하여 낙망하는 것이 아니라, 낙심끝에서 승리의 노래를 부르고 염려하지 말고 기도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주님이 주시는 새힘으로 달려가는 자!
짧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주님이 주시는 새힘으로 달려가는 우리가 됩시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대언합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사 40:31) 여호와를 소망하며 기다리는 자들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다시 일어나 새 힘을 얻어 끝까지 믿음의 길을 걷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환난 중에서도 기뻐합시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 5:3-4) 우리는 환난을 잘 통과하여 주님과 함께 기쁨을 누리는 복된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갈급한 심령으로 주님께 나아가고, 값없이 와서 마시는 자! 고난의 파도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연단을 잘 받고 정금과 같이 나아가는 자! 낙심끝에서 승리의 노래를 부르고, 염려하지 말고 기도하는 자! 이러한 복된 삶을 사는 자, 도우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로 죄 사함을 받을 때(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로 영접함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 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습니다(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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